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지(1)

by 루시아1004 2024. 5. 22.
반응형

멕시코의 역사적 배경

콜럼버스 이전 멕시코의 아동 희생 관행은 이 지역의 고대 문명, 특히 아즈텍 제국의 가장 복잡하고 참혹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은 순수한 것으로 간주되고 그들의 영혼이 특히 신에게 바치는 강력한 제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종종 희생 제물로 선택되었습니다. 스페인 선교사들은 이러한 의식을 근절하고 기독교 관습과 상징으로 대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1500년대 멕시코는 스페인의 정복 이후 심각한 종교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의 멕시코정복으로 아즈텍 제국은 멸망하고 기독교는 확산되었습니다.

스페인 선교사들, 특히 프란체스코회, 도미니크회, 예수회는 원주민 복음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종종 개종을 촉진하기 위해 원주민 전통과 가톨릭 관습을 혼합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1531년 과달루페의 성모가 원주민 개종자인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한 사건이었습니다. 과달루페 성모 발현은 스페인 사람과 원주민 모두가 기적적인 사건으로 여기며 원주민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토착 신앙과 천주교를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어린이의 희생 제물 의식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토착 다신교에서 지배적인 가톨릭 신앙으로의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멕시코의 종교 지형을 근본적으로 형성했습니다.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

1531년 12월 9일,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안 디에고가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 언덕을 넘어갈 때, 빛나는 구름 속에서 파란색 망토를 입은 갈색 피부의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을 천주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라고 밝히며, 자신이 발현한 곳에 성당을 세워 자신을 공경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에 후안 디에고는 성당으로 가서 스페인 출신의 수마라가 주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이를 믿지 못한 주교는 디에고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할 기적의 증표를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장소는 본래 아즈텍의 여신 토난친에게 제사를 지내던 피라미드가 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을 처음 목격한 곳에서 다시 만난 후안 디에고는 "주교가 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며 하소연했고, 이에 성모님은 "테페약산 정상에 장미가 만발해 있으니 그걸 모아서 나의 앞으로 가져오라"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겨울이라 날씨가 추웠고 테페약산 정상은 척박하고 황량한 바위투성이었기에 꽃이 피었을 리가 없었지만, 정상에 도착한 디에고는 장미가 가득 핀 것을 보고 꽃을 모아 자기가 걸치고 있던 틸마(망토)에 싸서 성모님에게 가져왔습니다. 성모님은 틸마에 싸인 꽃잎을 가지런히 놓아주면서, "이 꽃을 주교에게 가져가 내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하라"라고 말하며, 주교 앞에 갈 때까지 도중에 절대로 풀어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마침내 디에고는 주교 앞에  "성모님께서 보내신 꽃입니다"라며 틸마를 펼쳤습니다. 그러자 장미꽃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성모님의 형상이 틸마에 새겨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더욱이 그 장미들이 멕시코산 장미가 아니라 주교의 고향인 스페인의 카스티야 지방산 장미인 것을 확인한 주교는, 눈앞에 펼쳐진 신비하고도 경이로운 광경에 놀라 틸마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의 형상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의 영향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은 세계에 가톨릭이 전파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원주민인 후안 디에고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서 그녀가 원주민어로 의사소통한 것은 기독교 신앙 내에서 원주민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표징이었습니다. 테페약산의 성지는 빠르게 주요 순례지가 되어 멕시코 전역과 그 외 지역에서 신자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연례 축제일인 12월 12일에는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모여드는 세계 최대의 종교 행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과달루페의 성모는 그녀의 폭넓은 숭배와 영향력을 반영하여 종종 "멕시코의 여왕", "아메리카의 황후"로 불립니다. 종교적 의미 외에도 과달루페 성모 이야기는 심오한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과달루페의 성모상은 특히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동안 멕시코 정체성과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세기 초 멕시코 독립 전쟁 당시 반군은 성모님의 이미지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과달루페의 성모님 만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람들을 결집시켰습니다. 현대에도 과달루페의 성모는 계속해서 사회 정의와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멕시코와 미국의 라틴계 인구 사이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공동체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그녀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힘과 연대의 원천을 나타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