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튀르키예(터키) 사도 요한 대성당

by 루시아1004 2024. 7. 10.
반응형
튀르키예에 있는 사도 요한 대성당의 유적

 
튀르키예(터키)에 있는 사도 요한 대성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가까운 제자 중 한 사람인 요한 자신의 삶과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지속적인 유산에 대한 증거로서 기독교 역사에서 놀라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신성한 장소는 사도 요한의 삶과 사역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초기 기독교 역사를 반영합니다. 이 웅장한 대성당은 성 요한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곳에 세워져, 이 장소는 빠르게 주요 순례지가 되었으며, 사랑하는 사도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하는 기독교 세계 전역의 신자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사도 요한의 생애

1) 요한의 양육 배경

요한은 갈리려야 호숫가 북쪽 해안에 있는 어촌 마을 벳사이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유한 어부인 제베대오와 살로메의 아들이었습니다. 요한에게는 형 야고보가 있었는데, 야고보도 예수의 사도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베대오가 삯꾼들을 고용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가족은 상대적으로 부유했습니다(마르 1:20). 어업은 갈리래야에서 까다롭고 중요한 일이었으며 지역 주민들에게 주요 단백질 공급원을 제공했습니다. 형제들은 아마도 이 직업에 필요한 기술과 규율을 배우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 가정과 마찬가지로 요한도 독실한 종교 환경에서 자랐고 회당에 정기적으로 참석했으며 히브리어 성경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은 나중에 그의 신학 저술과 유대 신앙에 대한 깊은 이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사도 요한의 제자로의 부르심

요한의 삶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공관복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따르면, 요한과 그의 형인 야고보는 갈릴래아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되었습니다(마태복음 4:21-22; 마르코복음 1: 19-20; 루카복음 5:10-11). 그러나 요한복음은 추가적인 맥락을 제공하여 요한이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음을 암시합니다. 그분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요한복음 1:35-37)이라고 밝혔을 때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이 초기 만남은 예수를 따르기로 한 요한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요한은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빠르게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 제자는 예수님의 변모사건(마태복음 17:1-9),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순간(마가복음 5:37-43), 예수님의 겟세마니에서 고통받으실 때(마태복음 26:36-46) 등,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목격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3) 예수님과 함께 한 사역

예수님의 사역 전반에 걸쳐 요한은 친밀한 동반자이자 친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는 깊은 사랑과 충성으로 특징지어졌으며, 그로 인해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요한음 13:23; 19:26; 20:2; 21:7, 20). 요한은 예수님의 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일(요한복음 6:1-14), 물 위를 걷는 일(요한복음 6:16-21)과 같은 놀라운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예수님의 신성한 본성에 대한 그의 믿음을 확고히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그는 예수님 옆에 앉아 그분의 가슴에 기대어 앉았습니다(요한복음 13:23-25). 이는 그분과의 친밀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마지막 방문

1) 천상의 환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인 사도 요한은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인 에페소서에서 말년을 보냈습니다. 요한은 묵시록에 기록된 환시를 받은 파트모스 섬에서의 심오한 경험을 포함하여 격동적인 박해와 유배생활에서 살아남은 후 에페소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마지막 순간에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상의 환시를 경험했습니다. 그가 초라한 집에 누워 있을 때, 방은 갑자기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눈을 감은 요한은 눈부시게 빛나는 친숙한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그 따뜻함과 사랑을 풍기는 분은 그의 사랑하는 주님이시며 주인이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이 환시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성한 권위와 부드러운 동정심이 담긴 음성으로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와서 나와 당신의 다른 모든 형제들과 함께 내 식탁에 함께 하십시오. 드디어 그렇게 할 때가 왔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자주 말씀하셨던 영원한 친교에 대한 약속을 반영한 것으로, 이 말에 요한의 마음은 기쁨으로 뛰었습니다. 그는 마음의 눈으로 왕국에 놓인 장엄한 식탁을 보았습니다. 그 주위에는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아 등 사도들의 친숙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가 똑같은 신성한 빛과 사랑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2) 사도들과 마지막 인사

천상의 환시에서 사도들은 요한에게 다가가서 세상의 어떤 친밀감보다도 뛰어난 사랑과 동지애로 그를 끌어안았습니다. 교회를 세운 반석인 베드로는 형제애가 가득한 눈으로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요한의 형인 야고보는 요한을 꼭 끌어안았고, 그들의 영혼은 사후 세계에서 더욱 강해진 친밀함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안드레아와 필립보, 바르톨로메오와 다른 사람들은 기쁨과 환영의 얼굴로 요한에게 인사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함께한 여정과 희생,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천상의 집합은 언젠가 그들이 하느님의 왕국에서 함께 있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요한의 마음은 이제 지상 여행의 시련과 고난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소속감과 평화로 가득 찼습니다. 

3) 예수님의 마지막 강복

천상의 환시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과 모인 사도들 머리 위에 손을 내밀어 마지막 강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말에는 신성한 권위와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잘하였도다, 나의 충실한 종아. 여러분은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는 충실한 삶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성찰을 반영하는 이 말은 요한의 여정의 본질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음을 굳게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엄청난 고난을 견뎌 왔습니다. 예수님의 강복은 요한의 헌신에 대한 인정이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보상에 대한 확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요한은 압도적인 평화와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그 환시는 희미해지기 시작했지만, 하느님의 임재에 대한 영적 감각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은 요한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자신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기쁨에 들어갈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개의 기둥이 있는 대리석이 사도 요한의 무덤

사도 요한의 죽음

2세기 문헌인 외경 "요한의 행전"에 의하면 요한은 자신의 때가 왔다고 느껴 마침내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자신을 위해 동굴을 파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동굴에 들어갔는데 그때 강렬한 빛이 빛났고, 빛이 사라지자 요한도 사라졌습니다. 이 기록은 요한이 전통적인 의미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처럼 하느님에 의해 받아들여졌음을 시사합니다. 더구나 콘스탄티 통치기간 동안 그의 무덤이 개방되었는데 시체나 유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으므로 더욱 신빙성이 있습니다. 이 기적적인 사건은 요한이 가톨릭 전통의 성모 마리아처럼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려졌다는 믿음으로 이어졌으며, 요한은 성모님과 함께 어느 누구도, 어느 곳에서도 시신을 발견하지 않은 유일한 성인입니다.
 

사도 요한의 만나의 기적

요한의 만나 기적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초기 기독교 순례자들과 역사가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나는 특히 사도 요한의 축일인 5월 8일 즈음에 성 요한의 무덤에 나타난 고운 가루 물질로 묘사됩니다. 순례자들은 이 만나가 기적적인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수집했습니다. 만나의 정확한 성질과 모양은 수세기에 걸쳐 설명이 다양해졌습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그것을 미세한 먼지나 가루로 묘사하고, 다른 기록에서는 사막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던 구약성서의 만나와 유사한 달콤하고 빵 같은 물질이라고 묘사합니다. 이러한 변형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록의 공통된 내용은 만나의 신성한 기원과 치유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도 요한의 만나의 주요 속성은 치유력입니다. 만나를 수집한 순례자들은 만나를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으며, 종종 만나를 물이나 기름과 섞어 연고나 물약을 만들었습니다. 만나를 사용한 후 기적적인 회복과 고통 완화를 보고한 신자들의 증언은 만나가 신의 선물이라는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만나는 치유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악령과 불행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저술과 순례자 기록에는 만나의 영적 효능에 대한 폭넓은 믿음을 반영하는 구마 의식과 보호 의식에서 만나의 사용이 자주 언급됩니다. 주목할만한 역사적 언급 중 하나는 자신의 저서에서 기적을 언급한 6세기 역사가 프로코피우스입니다. 프로코피우스는 만나가 요한의 무덤에 매년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치유와 축복을 구하는 순례자들이 어떻게 만나를 열심히 수집했는지 설명했습니다. 이 기록은 이후 세기의 다른 기록과 함께 전통의 지속적인 성격을 강조합니다.

사도 요한 대성당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치하에서 기독교가 합법화된 후에 그들은 처음으로 사도 요한을 위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작고 오래되어 폐허가 된 이 교회는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그것을 헐고 그 자리에 매우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는데 지금의 사도 요한 대성당입니다. 건축은 548년경에 시작되어 56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주교였던 에페소서의 히파티우스의 감독하에 있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서는 대규모 건설이 드물었기 때문에 주교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지지를 얻었을 것입니다. 완공된 후 대성당은 그 시대의 가장 신성한 교회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주목에도 불구하고, 대성당은 9세기 이후 점차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습니다. 성 요한 대성당은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Hagia Sophia)의 전신인 중앙돔이 있는 십자형 모양으로 디자인된 웅장한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지진과 침략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이 건물은 파손되어 셀주크 터키 통치 기간 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건축 자재의 대부분은 다른 구조물을 위해 용도가 변경되었으며 대성당은 수세기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날 에페소서 순례자들은 일부 기둥 및 세례당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 대성당은 이 지역 초기 기독교의 풍부한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을 탐구하는데 관심 있는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