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리치에 있는 성 울리안나 성당은 14세기말 그곳에서 은수자로 살았던 유명한 기독교 신비주의자인 율리안나와 관련이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은 성당으로, 전 세계 사람들, 특히 노리치의 율리안나와 기독교 신비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순례지입니다. 방문객들은 재건된 은수자의 작은 은둔소를 보고 율리안나의 가르침을 묵상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노리치의 율리안나 생애
1342년 12월 영국 노리치 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율리안나는 노리치의 성 율리안나 성당에 붙어있는 작은 감방(은수처)에 갇혀 기도와 묵상의 고독한 삶을 살았던 여성이었습니다. 신비주의자, 신학자, 은수자인 노리치의 성 율리안나(Saint Julian of Norwich)는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율리안나라는 이름도 말년에 성 율리안나 성당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입니다.
당시 노리치는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번창했던 큰 항구도시였고, 신학적 배움에 있어서도 중심지였습니다. 노리치 사람들은 성직자들의 설교를 접할 수 있었고, 대륙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기에 신비가들한테서 새로운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율리안나는 자신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에 대해 무식하고 배우지 못했다는 의미보다는 신적 계시 앞에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는 겸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수도원, 교구학교, 그리고 대학에서 남성에게만 주어지던 정식 교육을 그녀가 받지 못했음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14세기 중반에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을 앗아간 파괴적인 전염병인 흑사병의 여파 속에서 살았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생애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과 1381년 농민 반란을 포함한 수많은 내부 사회 격변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1373년경 신비적 체험 이후부터 1416년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말 그대로 성당의 담장에 딸린 작은 은둔소에서 은수자로 살면서 기도와 묵상에 일생을 바쳤고, 그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영적 지도를 제공했습니다. 엄격한 그녀의 생활 방식 덕분에 그녀는 신비로운 경험과 성찰에 전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노리치 율리안나가 간청한 세 가지 선물
율리안나는 어린 시절에 하느님께 세 가지의 선물을 간청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은총이고, 둘째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신체적인 질병을 앓는 것이며, 셋째는 하느님의 선물로 ‘세 가지 상처’ 즉, 통회의 상처, 연민의 상처, 하느님을 갈망하기 때문에 받는 상처였습니다. 그녀는 서른 살 되던 해 심각한 병으로 쓰러져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던 중에 이 청원에 대한 응답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죽지 않았고, 대신에 누운 채로 환시로 나타난 십자가를 응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16번의 뚜렷한 계시를 경험했고, 병은 완전히 완쾌되었습니다.
1. 첫째 선물 : 그리스도의 수난에 함께하는 마음
율리안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님과 함께 더 많은 고통을 받기를 열망하였으며,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육신의 고통을 더 많이 알고자, 그 당시에 그분의 고통을 보셨던 성모님의 비통한 마음을, 참으로 그분을 사랑하였던 이들의 연민과 고통을 더 많이 알고자 그분 육신의 모습을 뵙기를 갈망하였습니다.
2. 둘째 선물 : 젊은 나이에 육신의 병을 앓는 것
율리안나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면, 영혼이 빠져나가지 않는 한, 마귀들의 유혹과 온갖 두려움을 안고 병고 속에서 자신이 받아야 할 영육 간의 모든 고통을 겪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비로 정화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며, 병고로 인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살게 되기를 바라며, 더 빨리 죽어 곧바로 하느님과 함께 있게 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서른 살 때, 육신의 질병을 앓았고 그 질병으로 사흘 밤낮을 눕게 되었습니다. 나흘째 밤에 죽음을 앞둔 이들이 받는 병자 성사 예식을 받은 후 사흘동안 혼절을 반복하여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영적 지도 신부님이 오셔서 그녀의 얼굴 앞에 십자가를 놓고서 "그대의 하느님이신 구원자의 고상을 가져왔습니다. 고상을 바라보며 위안으로 삼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리안나가 십자고상의 주님 얼굴에 눈을 맞추자 시야기 흐려지기 시작하고, 방 안은 온통 깜깜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십자고상으로부터 모든 것을 비추는 빛을 보았고, 자신의 몸의 윗부분이 죽어가기 시작했으며 숨도 가빠져 그녀는 죽음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녀는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몸의 윗부분이 전처럼 온전해져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랐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치유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신비스럽게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3. 셋째 선물 : 하느님의 세 가지 상처
율리안나는 하느님의 은총과 거룩한 교회의 가르침으로 평생 동안 세 가지 상처를 받아들이겠다는 큰 열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즉, 통회의 상처, 애정 어린 연민의 상처, 하느님을 갈망하기 때문에 받는 상처로 이 마지막 간청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간창한 것입니다. 그녀는 서른 살 되던 해 심각한 병으로 쓰러져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던 중에 이 청원에 대한 응답을 받게 됩니다.
율리안나의 환시
율리안나의 환시는 그녀가 30세가 되던 해, 그녀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은 심각한 질병의 시기에 나타났습니다. 당시 그녀는 심하게 병을 앓고 있어 1373년 5월 8일에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사제로부터 가톨릭 신자의 마지막 의식인 병자성사를 받았습니다. 사제는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의 발아래쪽에서 십자가를 들고 서서 기도하였는데, 율리안나는 갑자기 시력을 잃고 사지가 마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십자가 쪽을 바라보고 있던 율리안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환시를 보았습니다. 이날 그녀는 몇 시간 동안 15번에 걸쳐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환시를 보았고, 다음날 밤에는 16번째 마지막 환시를 보았습니다. 일주일 후 5월 13일에 율리안나는 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그녀는 바로 자신이 본 환시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390년대 초, 율리안나는 자신의 환시의 의미에 대해 신학적 탐구를 시작하였으며 1420년대에 완성되기까지 여러 차례 수정되어, 오늘날에도 학자와 영적 구도자들에게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계시
율리안나의 신성한 사랑의 계시는 그녀가 거의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고통 중에 16차례 환시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삼위일체에 대한 계시를 받았으며, 그 후 20년 넘게 자신이 체험한 신비를 묵상하였습니다. 그녀는 환시 중에 경험한 내용을 모아 "Revelations of Divine Love(사랑의 계시)"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것은 영국에서 여성이 영어로 남긴 최초의 작품입니다.
첫 번째 계시에서 그녀는 예수님의 가시관을 바라보며 정확하게 묘사했습니다. “붉은 피가 왕관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뜨겁고 자유롭고 풍부하게 살아있는 물줄기였다. 그런데 무시무시하고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그 피는 상냥하고 사랑스러웠다.” 이 환시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깊은 개인적 만남이며, 그녀는 그분의 육체적 고통과 인류를 위한 그분의 무한한 사랑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율리안나는 예수님의 고난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선하심의 깊이를 보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이 세상에 대한 그분의 무한한 연민의 표현이며, 사랑과 구원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두 번째 계시는 주님의 아름다운 얼굴색이 수난으로 변색되어 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 계시는 모든 지혜이자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참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어 올바르게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계시는 그리스도의 나약하신 몸이 채찍질을 당하시어 피가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계시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수난으로 악마가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계시는 하늘에 있는 당신의 복된 종들에게 보상을 해 주시는 우리 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계시는 하느님의 선에 의해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감정인 기쁨과 슬픔의 반복적 체험 안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계시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수난과 그분의 참혹한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아홉 번째 계시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이룬 구원으로 복되신 삼위일체 안에서 누리는 즐거움에 관한 것입니다.
열 번째 계시는 예수님께서 사랑 때문에 두쪽으로 나눠진 성심을 기뻐하시며 보여주십니다.
열한 번째 계시는 주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성모님을 보여 주시는 드높은 영적 환시입니다.
열두 번째 계시는 우리 주님의 지극히 존귀하고 높으신 존재에 관한 것입니다.
열세 번째 계시는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에 대해 우리가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라시며, 이것을 이루신 힘과 지혜, 선으로 모든 것을 잘 되게 하실 것입니다.
열네 번째 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열망의 근원이시며, 우리의 기도는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분께서는 당신의 선하심으로 그 기도를 가득 채워 주십니다.
열다섯 번째 계시는 모든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 주님의 선하심으로 높이 들어 올려지고, 그곳에서 우리의 상급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모시고 천국의 지복과 기쁨으로 충만해지리라는 것입니다.
열여섯 번째 계시는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지극히 복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영원히 머무시어 우리는 적에게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출판사 "사랑의 계시" 강대인 옮김 참조)
노리치의 성 율리안나 성당
성 율리안나 성당은 노리치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로 원래 성당의 역사는 최소한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당이 설립된 정확한 날짜는 불확실하지만, 노르만 시대부터 문서에 성당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리안나는 1373년경부터 1416년 이후 사망할 때까지 성 율리안나 성당에 붙어있는 작은 은둔소에서 은수자로 살았습니다. 그녀의 은둔소에는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교회로 향하는 창문이 있었고, 방문객들과 대화할 수 있는 두 번째 창문은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1845년 경 성 율리안나 성당은 동쪽 벽이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보수 공사가 절실해져, 기금 모금이 시행되어 보수 공사에 들어갔고, 20세기에 와서 다시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으나,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의 공습 동안 노리치 시 대부분이 독일군에 의해 폭격을 당하면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 역사적, 영적 의미로 인해 전쟁 후 교회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나,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기금이 다시 모금되었고, 현재 대부분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은수자의 방이었던 자리에는 성체 조배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1953년에 교회는 율리안나의 은둔소를 포함하여 원래의 중세 디자인으로 재건축되었고, 복원된 건물은 노리치 시와 율리안나의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에서 계속 힘을 얻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회복력의 강력한 상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