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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성지 : 이탈리아 성 프란치스코 오상의 라 베르나 수도원(2)

by 루시아1004 202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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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성인이 오상 받은 경당이 있는 라 베르나 수도원
프란치스코성인이 오상 받은 경당이 있는 라 베르나 수도원

 

이탈리아 로마 북쪽 토스카주의 아펜니노 산맥 정상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라 베르나 수도원은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중부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수도원으로 지금도 이 높은 곳까지 도보로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많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창설자이면서 그리스도를 가장 닮은 성인으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예수님의 오상을 받은 성지로도 유명합니다.

프란치스코의 십자가 사랑

성 프란치스코는 회개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성인은 십자가에 대한 묵상을 할 때마다 눈물이 흘러넘쳐 성인의 얼굴에는 눈물의 골짜기가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회개 초기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강한 음성은 그를 내적 변화의 길로 돌아서게 만들었습니다. 황폐한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십자가의 주님으로부터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하신 그날부터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처들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으며 회개의 결심이 깊어졌고, 그의 영혼은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녹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사랑으로 지니고 간직하여 그리스도의 발자취에 대한 흠모는 그를 순교와 성지순례에 대한 열망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의 땅인 예루살렘을 순례하며 주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깊이 묵상하고 거기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가톨릭교회에 "14처의 십자가의 길"이란 기도를 낳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은 처음에는 수도원 안에서 이루어지다가 점차 확대되어 전 세계로 퍼져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증받은 라 베르나 산 

1213년 성 프란치스코는 제자들과 함께 선교여행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토스카나 지역에 머물게 되었는데, 마침 젊은 백작의 작위를 위한 연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초대되었고, 그중에 키우시의 올랜도 백작도 있었습니다. 이 연회에서 프란치스코가 설교를 하였는데 올랜도 백작은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듣고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아 그를 자신의 성으로 초대했습니다. 대화 중에 프란치스코의 성실함, 헌신, 영적 지혜는 백작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의 사명을 지원하고자 하는 올랜도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묵상과 기도의 중요성을 이해한 올랜도 백작은 관대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는 라 베르나(La Verna)로 알려진 험준한 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프란치스코와 그의 추종자들이 기도하고, 명상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올랜도 백작은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에게 라 베르나산을 선물하고 싶다는 소망을 표명했으며 프란치스코에게 그 산을 방문하여 그것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초대했습니다. 이 제안에 하느님의 섭리를 인식한 프란치스코는 제안을 받아들여 동료 몇 명과 함께 라 베르나로 떠나게 됩니다. 라 베르나에 도착하자마자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은 산의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깊은 평화와 신성한 주님의 현존을 느꼈습니다. 라 베르나의 영적 중요성을 확신한 프란치스코는 감사하며 올랜도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공식적인 산 기증이 이루어졌습니다. 올랜도 백작은 프란치스코에 대한 깊은 존경심으로 선물의 합법성을 적절하게 문서화하여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위한 토지를 확보하게 됩니다. 이 기부는 단순한 재산의 양도 그 이상으로 프란치스코의 사명을 지지하는 심오한 행동이며, 프란치스코와 그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영적, 공동체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헌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입니다. 라 베르나 산은 프란치스코에게 단식과 기도, 관상, 보속, 희생의 장소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온몸과 영으로 그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오상

1) 오상의 의의와 배경

중세에는 그리스도의 오상을 경배함으로써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신심이 있었으며, 현재까지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두 손과 두 발의 상처와 창에 찔린 옆구리의 상처(요한 19,34)로 성인들에게 그대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합니다. 오상에는 두 가지의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손과 발, 옆구리에 우리 눈에 보이는 상처가 나타나는 것으로 오상의 비오 신부님 같이 피부의 구멍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외적인 오상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내적인 오상입니다. 이탈리아의 주보성인인 시에나의 카나리나 성녀와 같은 경우로 겉으로 오상이 보이지 않지만 주님의 수난을 체험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성인은 상처뿐만 아니라 못이 박혀 있었습니다. 실제로 오상을 받은 후 성인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의 동료이자 비서인 레오 형제의 기록에 의하면 1224년 여름, 이미 병약해진 프란치스코는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들, 특히 레오 형제와 함께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봉헌하는 40일간의 보속으로 단식하기 위해 라 베르나에 도착했습니다. 중세에는 성 미카엘 대천사에 대한 신심이 매우 강했습니다. 성인은 일반적으로 1년에 5번씩 40일간의 보속기간을 가졌는데, 대림, 성탄, 교회의 주요한 전례시기 외에도 성인들에게 봉헌하는 40일간의 보속을 해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8월 15일부터 9월 29일까지 성모님과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봉헌된 40일간의 보속 기간 중에 십자가 현양 축일 즈음인 9월 14일에 오상을 받게 됩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날 새벽에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주 예수님 구하오니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주소서. 먼저 제가 살고 있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가장 괴로웠던 수난 시간에 견디어 내신 그 고통을 제 영혼과 육신이 느낄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이 저희 죄인들을 위해 그 수난을 기꺼이 견디어 내실만큼 불타올랐던 그 사랑을 제 마음에 할 수 있는 만큼 느끼게 해 주소서."라고 예수님의 고통과 사랑을 청합니다. 사랑하기에 받아들이는 고통, 그 고통의 최고 형태가 십자가라면 십자가는 동시에 가장 큰 사랑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 받은 장소

2) 세라핌 천사의 현시와 오상

프란치스코와 레오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분의 무한한 자비를 묵상하면서 그 열정이 너무나도 깊이 불타올라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묵상 속에 불태우고 있던 그날 아침 하늘로부터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세라핌 천사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사는 신성한 사랑과 성령을 상징하는 불꽃에 싸여 있었고, 예수님의 궁극적 희생을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오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날개는 머리 위로 뻗쳐있고, 둘은 날 수 있도록 펼쳐져 있었으며 다른 두 날개는 온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환시는 프란치스코 마음에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가장 강렬한 열정과 불을 남겨주었습니다. 
환시가 끝났을 때, 그의 손과 발에는 세라핌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몸에서 본 것과 똑같은 십자가형의 상처가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레오형제가 전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상의 모습은, 그의 손과 발은 가운데가 못으로 관통된 것과 같은 모습 즉, 둥글고 검은색의 못의 머리가 손바닥과 발등의 살 밖으로 나와 있었고, 못 끝은 손등과 발바닥까지 너무 깊숙이 관통하여 구부러져 있었고, 못의 양 끝 사이로 손가락을 쉽게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옆구리에는 창에 찔린 자국이 나타나 살이 헤어져 붉게 피가 맺혀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에서는 여러 번 성혈이 흘러나와 수도복과 바지를 적시곤 하였습니다. 오상은 그의 영혼 깊은 곳에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사랑으로 찍혀 있었고, 외적으로 그의 살에 새겨져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란치스코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라 베르나 산을 제2의 골고다가 되게 하였습니다. 

라 베르나 절벽 위 수도원

라베르나 수도원은 이탈리아 로마 북쪽 토스카나주의 아펜니노 산맥 정상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발 1,128미터의 고지에 있으며 70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암벽 위에 있는 수도원은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중부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수도원입니다. 수도원의 한쪽에는 프란치스코가 머물던 작은 동굴이 있으며, 여러 개의 경당이 있습니다. 오상 경당은 프란치스코가 십자가의 오상을 받았던 장소에 지어진 경당입니다. 13세기에 오상을 받은 곳에 불규칙한 육각형의 대리석으로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성인이 오상을 받았던 자리에는 "주님, 여기에서 당신의 종 프란치스코에게 우리 구원의 표지를 보여 주셨나이다"라는 글귀가 대리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막달레나 경당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항상 이곳에 머물며 기도를 하셨던 독방으로 긴 돌이 놓여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어느 날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도하던 중 예수님께서 나타나 이 돌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라 베르나에서 가장 오래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은 1224년 9월 30일 프란치스코가 라 베르나를 떠나면서 형제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인사를 하던 장소입니다. 유품경당에는 성인이 오상을 받았을 때 입었던 수도복, 오상의 피가 묻어 있는 천, 성인의 지팡이와 채찍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현재 라 베르나 수도원에는 아직까지도 청빈, 순명의 수도원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작은 형제회의 수사들이 있어, 오상 행렬을 통해서 순례자들에게 프란치스코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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