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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성지 :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와 산 다미아노 수도원 성당(1)

by 루시아1004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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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가 환시를 본 산 다미아노 수도원 성당
성 프란치스코가 환시를 본 산 다미아노 수도원 성당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1) 초기 생애

프란치스코는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피에트로는 프랑스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 피카는 프로방스 태생의 귀족 여성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어머니 피카 부인이 해산 때가 지나도 아이를 낳지 못하고 심한 진통을 느끼고 있을 때, 한 순례자가 대문을 두드리며 "산모가 저 훌륭한 침실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기를 낳지 못할 것입니다. 저 외양간으로 옮겨, 한쪽에 짚을 깔고 눕게 하십시오." 하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산모의 심한 진통이 멈추고 아기를 순산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기의 첫 번째 요람은 예수님의 요람과 같이 외양간에 짚을 깐 구유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후에 그 외양간은 성당으로 개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이 작은 성당은 아시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성당 문 위에는 "이 기도소은 소와 나귀의 외양간이었지만, 여기서 세상의 거울인 프란치스코가 태어났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들을 낳은 피카 부인은 성당에 가서 세례를 받고 아들의 세례명을 요한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돌아온 그의 부친은 아들을 ‘프랑스인’이라는 뜻의 프란치스코 (이탈리아어로는 프란체스코)로 바꾸었습니다. 낙타 털옷을 걸친 세례자 요한이 아니라 훌륭한 천성을 지닌 프랑스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있는 산죠르죠 성당 부속학교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으로 프란치스코에게 자기 사업을 물려주려고 일찍부터 사업경험을 익히게 하였는데, 프란치스코는 상냥하고 인상이 좋으며 고객들을 끄는 매력적인 장사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귀족들과 어울려 화려한 생활을 즐겼고 쾌락에 빠져 연회나 비싼 옷차림으로 지나친 사치를 하였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경애심이 있었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고 배려하였으며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2) 포로생활

프란치스코가 태어난 시대는 이탈리아 반도가 전쟁과 내란으로 소용돌이치던 시대였습니다. 아시시는 1174년 마에스 대주교에 의해 점령된 바 있었으나 1177년 자신들의 힘으로 자치권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아시시의 백작인 콜라드에게 굴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항한 시민들은 군주들에게 창부리를 돌려 귀족들의 성채를 공격하여 불태웠고 귀족들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귀족들은 이웃나라 페루자에게 원조를 청하며 자신들을 구해준다면 페루자의 주도권을 인정하겠다고 약속하게 됩니다. 1202년 페루자군은 포위된 귀족들을 구출하기 위해 진군해 왔으며 아시시의 시민들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승리는 페루자군에 돌아갔고 아시시의 많은 전투대원들이 포로가 되었는데 프란치스코도 그중 한 사람으로 포로로 잡혀 1년가량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뒤 그는 다시 이전 생활로 돌아가,  연회와 사치와 낭비로 방탕한 세월을 보내다가 결핵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는 투병하면서 세속적인 삶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후회하게 됩니다. 

3) 환시체험

프란치스코는 병이 회복되자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갔지만, 예전과 달리 그런 방탕한 생활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그는 먼 나라로 가서 큰 공을 세우기 위해 전투에 참전하려고 계획합니다.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 그는 값비싼 장비를 갖추었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귀족에게 어울리는 갑옷과 무기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가난한 귀족과 마주치게 된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값비싼 장비를 그의 보잘것없는 장비와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날 밤 프란치스코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상점 안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반 위에 쌓여 있어야 할 옷감 대신에, 번쩍이는 방패와 창, 찬란한 갑옷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너와 너의 군인들의 것이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프란치스코는 좋은 징조라 생각하고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프란치스코는 열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환시를 보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야, 너는 어디로 가느냐? 너는 주인과 종, 둘 중에 어느 쪽에 더 기대를 걸고 있느냐? 너는 왜 주인을 따르지 않고 종을 따르려 하느냐" 프란치스코는 깜짝 놀라 자기에게 묻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주여,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너는 아시시로 돌아가라. 거기서 네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본 환시를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의 계획을 버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 고향 아시시로 향하게 됩니다. 

4) 프란치스코의 영적 변화

의기양양하게 출전했던 프란치스코가 중도에서 되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냉소하고 비겁한 놈이라고 조롱하였으며, 그의 부친은 너무 창피해서 격노했습니다. 아시시로 돌아온 후로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은 물론 친구들과의 연회도 피하기 시작했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소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한적한 아시시의 산기슭 동굴 속에 혼자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어두운 동굴에서 오랫동안 기도를 드리면서 " 주님, 당신의 길을 제게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제게 가르쳐 주소서"(시편 25:4)라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지시해 달라고 하느님께 탄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포기하지 않고 동굴 속에 들어가 열심히 자기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그는 큰 응답과 위로를 얻고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후에 프란치스코는 "나는 동굴에서 둘도 없는 귀중한 보물을 발견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기도의 감미로운 맛을 알게 되고 그의 기도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과 흉년, 중병으로 인해 곤궁에 빠져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점점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자신도 실제 가난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가난을 알기 위해 그는 스스로 구걸을 하기로 결심하여 로마 순례를 계획하게 됩니다. 로마 대도시에서는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며, 그곳에서 실천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영성

프란치스코는 로마에 도착하여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서 구걸하는 걸인들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그는 누더기를 걸치고 빵을 먹으면서 가난이 주는 영적 매력에 더욱 이끌리게 되었습니다. 한 모금의 샘물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빵 한 조각, 
별이 빛나는 밤하늘 밑에 누울 잠자리 이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생활에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프란치스코가 로마에서 돌아온 후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프란치스코에게 "프란치스코! 네가 나를 발견하고자 한다면 이 세상 재물을 멸시하고 자기 자신을 버려라. 그리고 달콤한 것보다 고난을 선택하여라. 이렇게 변화한다면 모든 것을 깨닫게 되리라."는 말씀에 위로를 얻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시시 근처에 나환자 병원이 있었는데 처음에 프란치스코는 산책길에 병원 앞을 지날 때마다 겁을 먹었습니다. 특히 바람이 불어와 악취가 길까지 퍼지면 얼굴을 돌리고 손으로 코를 막고 급히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홀로 말을 타고 움브리아 평원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말이 갑자기 요동하여 앞을 바라보니, 나환자가 서있었습니다. 순간 그는 멈칫했으며 빨리 도망칠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속삭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가 꺼리던 일이 너에게 기쁨이 되고 감미로움이 될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프란치스코는 말에서 내려 나환자에게 다가갔습니다. 나환자의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고약한 고름 냄새가 코를 찔렀고, 불쑥 내민 손은 썩어 있었지만, 그는 나환자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다시 탔을 때 그의 영혼은 감미로움과 행복감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다음날 프란치스코는 지금껏 나환자 병원을 애써 피해 다니던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가, 병원 정문을 두들겼습니다.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방에서 나환자들이 몰려나왔습니다. 반쯤 뭉뚱그려진 얼굴, 썩은 팔과 손가락 없는 손을 가진 나환자들이 그를 에워쌌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가지고 온 자루에서 물건들을 꺼내어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받으려고 내민 썩어 문드러진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주신 산 다미아노 성당에 걸린 십자가

산 다미아노에서의 환시

아시시 마을 근교 조금 낮은 곳에는 반쯤 허물어져 황폐해진 산 다미아노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 안에는 비잔틴 양식의 큰 십자가가 하나 걸려 있었는데, 프란치스코는 자주 이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바쳤습니다. "오, 주여!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당신의 뜻을 알도록 해주시고 거룩한 당신 뜻에 일치하게 하소서." 그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뜻과 일치하여 행동할 수 있는 빛을 간구했습니다.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가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데 십자가 예수님께서 당신의 종 프란치스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야, 네가 가서 황폐해진 내 집을 고쳐라. 거의 쓰러질 것 같구나"  프란치스코는 즉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여, 기쁜 마음으로 당신 뜻을 실행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느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 그대로 해석하여 허물어져 가는 성당을 수리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부친의 상점으로 가서 값비싼 옷감들을 큰 마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는 말까지 팔아 거액의 돈을 마련하여 사제에게 주었으나 사제는 그 돈을 거절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노사제 옆에 앉아 그분의 결심을 바꾸려고 무척 애썼으나 허사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에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신심활동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사제관 근처에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을 그의 기도소로 정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단식하며 지냈습니다. 며칠 후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아시시로 돌아와 보니 상점의 값비싼 물건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프란치스코를 찾으러 다녔으나 동굴에 있는 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사제는 프란치스코가 성당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던 돈을 찾아 아버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한 달 동안 동굴에서 지내며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생애를 깨닫기 위해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천사들의 성 마리아라고 불리는 작은 옛 성당 근처 들판을 거닐며 수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 왜 우냐고 묻자, 그는 "나는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며 웁니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운다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도 몹시 감동되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개종

예수님의 메시지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해석은 곧 더 넓은 이해로 발전했습니다. 그는 “내 집을 수리하라”는 부르심이 교회 자체의 영적 쇄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받아들인 프란치스코는 먼저 가족이 소유한 경제적 부를 포기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개종은 그가 자신의 상속 재산과 부를 공개적으로 포기했을 때 절정에 달했습니다. 1206년 4월 주교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와 극적인 대결을 벌이던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상속권은 물론 부친과의 관계마저 포기한다고 선언하였고, 심지어는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아버지에게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아버지의 돈과 그분으로부터 얻어 입은 옷을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과 주교님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교님은 당신 가운을 펴서 프란치스코를 감싸주었습니다. 이때부터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하느님의 종, 교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교님은 정원사의 소유였던 낡은 외투를 찾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이 옷을 기쁘게 받아 옷 뒤쪽에 십자가 표시를 한 뒤  성경말씀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산 다미아노 성당 재건

프란치스코는 마침내 굽비오에 도착하게 되는데 거기서 한 형제를 만나 그가 원했던 은수자들의 옷 한 벌과 허리띠, 신발 그리고 지팡이를 얻게 됩니다. 그는 굽비오에 있는 나환자 병원에 머물면서 나환자들을 돌보았는데 환자들의 발을 씻기고, 붕대로 상처를 감아주고, 종기를 짜서 고름을 닦아냈으며, 가끔 고름 나는 상처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환자들을 마치 자녀를 대하는 어머니와 같이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성당을 수리하기 위해 다시 아시시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산 다미아노 성당 수리공사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당을 수리할 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시시의 시장에서 은수자 복장을 하고 떠돌이 악단처럼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마치면 청중들 사이를 돌면서 구걸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당을 수리할 돌 하나를 봉헌하면, 천국에서 하나를 보상받을 것이고 돌 둘을 바치면 둘을 보상받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상당한 돌을 마련하여 손수 돌을 운반하고 벽돌 쌓는 일도 하였습니다. 이 공사를 끝낸 이후 프란치스코는 여러 성당을 재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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