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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파리 기적의 메달 성모 성당

by 루시아1004 2024.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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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가타리나 라부레의 유해가 묻힌 기적의 메달 성모성당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의 생애와 신앙

가타리나 라부레는 1806년 5월 2일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11명의 자녀 중 9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겨우 9살이었을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깊은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미사 후 가타리나는 침실에 있는 성모상을 붙들고 "성모님, 이제부터는 당신이 제 어머니가 되어 주세요."라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가타리나는 열세 살에 첫 영성체를 하면서 오로지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겠다고 결심하면서 희생과 보속을 실천하고 기도생활에 충실했습니다.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집에서 약 2km 떨어진 자비 수녀회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거나 차가운 성당 돌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오랜 시간 묵상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꿈을 꾸었는데 성당에서 나이 든 신부님이 미사를 끝낸 후 가타리나를 가까이 부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기쁜 마음으로 내게 올 날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위해 마련하신 계획이 있단다.' 이때 가타리나는 이 꿈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열여덟 살이 되자 가타리나는 집안일을 동생들에게 맡기고 샤티옹 쉬르 센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인근에 있는 자비의 수녀원에서 가타리나는 벽에 걸려있는 초상화를 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몇 년 전 꿈에서 본 바로 그 사제였던 것입니다. 옆에 있는 수녀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었을 때 가타리나는 그분은 바로 수녀회의 설립자이신 성 빈첸시오 드 폴 신부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 꿈의 의미가 그녀를 자비의 수녀원으로 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830년 1월 22일 가타리나는 성 빈첸시오 자비의 수녀회에 입회하여 '가타리나'라는 수도명을 받아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가 되었습니다. 가타리나 수녀에게 성모님께서 처음 발현하신 것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7월 18일이었으며, 이 은총은 두 번 더 주어졌습니다. 세 번의 발현이 끝나고 1831년 2월 5일부터 가타리나 수녀는 파리의 뤼 드 륄리에 있는 앙귀앙 노인 요양원에서 새로운 소임을 시작했습니다. 노인들을 돌보며,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도 하고, 농사도 짓고 가축도 키웠습니다. 47년이 지난 1876년 12월 31일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가타리나 수녀의 생애에 있어서도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께로 간다는 기쁜 마음으로 병자성사를 받은 후, "악마를 겁에 질려 떨게 하시는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고 기도했으며,  저녁 7시에 평화로운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랜 세월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얻은 관절염의 지독한 고통도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선종 후 57년이 지난 1933년 무덤을 개봉했는데, 가타리나 수녀의 유해와 수도복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긴 세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습한 환경에서 전혀 부패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으며 신비였습니다. 그해 3월 1일 페디에 추기경이 참석한 가운데 거룩한 주검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행사가 거행되었으며, 그녀의 유해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성당인, 파리의 "기적의 메달 성모성당"으로 모셔져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가타리나가 발현하신 성모님의 무릎 위에 두 손을 얹는 모습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발현

1830년 7월 18일 밤 푸른 망토에 흰 베일을 쓰신 성모님께서 가타리나 수녀에게 처음으로 발현하셨습니다. 당시 수녀원의 수련자였던 가타리나는 어린 천사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성당으로 인도하는 천사를 따라 성당으로 들어가니 성당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천사는 그녀를 감실 앞 난관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녀가 무릎을 꿇자 어디선가 명주 자락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광채로 싸인 아름다운 성모님께서 제대 앞에 나타나, 신학교 교장 신부님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가타리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합장한 두 손을 성모님의 무릎 위에 얹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셨지만, 이렇게 직접 만지고 그 무릎 위에 두 손을 얹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신비이자 은총입니다. 그 순간 그녀가 일생 중 가장 큰 행복과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였을 때 성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딸아, 하느님께서 네가 사명을 맡기를 원하신다. 프랑스에는 곧 무서운 일이 닥쳐올 것이다. 왕실이 무너질 것이며 전 세계는 무서운 재난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믿고 열심히 청하는 사람에게는 풍성한 은총이 내릴 것이다. 제대 앞으로 오너라. 거기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은총이 쏟아질 것이다. ....많은 박해가 있을 것이며 십자가는 업신 여김을 받아 땅에 세차게 내던져질 것이고 피가 사방에 넘쳐흐를 것이다. 그리고 대주교도 죽임을 당할 것이다."  또한 성모님은 가타리나와 모든 신자들에게 기도 생활과 헌신을 심화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녀는 기도를 통해, 특히 복되신 동정녀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기도하라는 부르심은 성모님이  가타리나에게 전한 모든 메시지의 중심 주제였습니다. 성모님의 발현 직후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났는데, 성모님께서 이미 예언하신 대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십자가는 모욕을 당하고 수녀원도 포화로 진동하고 폭도들에게 포위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의 약속대로 가타리나 수녀가 사는 수녀원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1830년 11월 27일에 성당 제대 위에 성모님께서 두 번째 발현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커다란 지구의 위에서 뱀을 밟고서 십자가가 꽂힌 작은 지구의를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네가 보는 이 지구의는 세계를 상징한다. 나는 세계를 위하여, 또 이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이 빛은 내게 청하는 사람들에게 내려 주는 은총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은총을 받지 못하는데, 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성모님께서 두 손을 펴면서 팔을 아래로 넓게 펼치시자 손에 들고 있던 지구의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주위에 타원형의 테두리가 형성되더니 불꽃처럼 번쩍이는 금빛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모 마리아는 카타리나에게 신성한 은총과 보호의 상징이 될 기적의 메달의 디자인을 보여 주셨습니다. " 이런 모양으로 메달을 만들어라. 믿는 마음으로 이 메달을 착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큰 은총을 받을 것이다. 특히 목에 걸고 다니면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30년 12월 말경, 성모님께서 세 번째로 발현하셨습니다. 그날 밤 가타리나 수녀가 성모님을 뵙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전처럼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는 글자로 둘러싸여 모습을 드러내시며,  메달을 만들라는 말씀을 다시 하셨습니다.

기적의 메달: 신성한 은총의 원천

성모님은 두 번째 발현에서 가타리나에게 신성한 은총과 보호의 상징이 될 기적의 메달의 모습을 보여 주시며, 메달을 만들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이 메달을 믿음으로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큰 은총이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메달의 앞면에는 지구 위에 서 있는 성모님이 발아래 뱀을 짓밟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악에 대한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녀의 손에서 발산되는 빛줄기는 그녀의 중보를 구하는 이들에게 그녀가 베푸는 은총을 상징했습니다. 메달의 뒷면에는 두 개의 하트(예수 성심과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와 12개의 별이 있는 십자가와 얽힌 "M"이 특징입니다. 이 디자인은 성모님과 예수님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인류 구원을 위한 성모님의 역할을 상징합니다. 서로 얽힌 "M"과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에 대한 성모님의 참여를 강조하는 반면, 두 개의 하트는 인류를 향한 예수님과 성모님의 깊은 사랑을 강조합니다. 성모님의 메시지에는 믿음과 헌신으로 메달을 착용한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약속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약속은 하느님의 중보에 대한 믿음과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기적의 메달은 지상에 있는 자녀들에 대한 성모님의 지속적인 보살핌과 지원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표시가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카타리나에게  메달을 홍보하는 데 직면하게 될 어려움을 인정하면서 격려와 확신을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속적인 지원과 지도를 통해 가타리나를 안심시켰습니다. 이 격려의 메시지는 가타리나가 기적의 메달에 대한 헌신을 전파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 매우 중요했습니다.

성모님 발현 후 가타리나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인 장 마리 알라델(Jean Marie Aladel) 신부와 함께 메달을 제작했습니다. 최초의 기적 메달은 1832년에 제작 및 배포되었으며, 프랑스 전역과 그 외 지역으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기적의 메달과 관련된 가장 많이 기록된 유형의 기적 중 하나는 육체적 치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적의 메달로 인한 가장 초기이자 가장 주목할만한 기적 중 하나가 로마에서 일어났는데, 그곳에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 소녀가 가족으로부터 메달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달을 착용하고 간절히 기도한 후, 소녀는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당시 널리 보도된 이 기적은 메달의 명성을 크게 높이고 종교계 내에서 메달의 효능을 더욱 확증했습니다. 육체적 치유를 넘어 기적의 메달은 심오한 영적 개종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부유한 유다인 은행가이자 무신론자인 알폰스 라티스본은 1842년 친구가 준 기적의 메달을 마지못해 착용하고 성 베르나르도 성인의 기도를 하기로 동의했습니다. 로마의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교회를 방문하는 동안 그는 메달에 나타난 것과 똑같은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습니다. 이 기적적인 만남으로 그는 즉시 가톨릭교로 개종했고, 나중에 예수회 신부가 되었습니다. 194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형수 클로드 뉴먼은 다른 수감자가 기적의 메달을 버린 기적의 메달을 발견했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흥미를 느낀 그는 메달을 착용하기 시작했고 곧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경험했습니다. 그녀는 그를 위로하고 그가 천주교로 개종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뉴먼는 변화되었으며 그의 깊은 신앙은 동료 수감자와 교도소 직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개인의 개종과 구원에 대한 메달의 강력한 영향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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