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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체코 프라하 아기 예수 대성당

by 루시아1004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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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아기 예수상이 모셔져 있는 아기 예수 대성당
프라하의 아기 예수상이 모셔져 있는 아기 예수 대성당

승리의 성모 성당으로도 알려진 아기 예수 대성당은 17세기 초에 건축된 경이로운 건축물입니다. 풍부한 역사와 프라하 아기 예수상으로 유명한 이 장엄한 대성당은 기적적인 치유, 신성한 보호, 신비한 만남 등을 통해 희망의 등불이자 지속적인 신앙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프라하 아기 예수 대성당의 역사적 배경

17세기 초 프라하는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가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도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두 주요 기독교 종파 사이에 종종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합스부르크 통치 하의 신성 로마 제국은 개신교의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이 지역에서 가톨릭을 강화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승리의 성모 성당의 기초가 세워졌습니다. 승리의 성모 성당 건축의 초기 원동력은 자신들의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예배 장소를 설립하고자 했던 프라하에 거주하는 독일 루터교도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원래 이 교회는 1613년에 지어져 1618년에 완공되었는데, 이는 유럽 대부분을 황폐화시키고 프라하에 큰 영향을 미친 30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입니다. 1620년 30년 전쟁 초기의 결정적인 전투인 화이트 마운틴 전투(Battle of White Mountain) 이후 교회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끄는 가톨릭 군대가 개신교 보헤미안 영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중요한 정치적, 종교적 의미를 지닌 지역의 재가톨릭화 시대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1624년에 이 교회는 아빌라의 성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설립한 가톨릭 수도회인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에게 인수되었습니다. 

교회의 공식 명칭인 "승리의 성모 성당"은 가르멜회 회원들의 깊은 마리아 신심을 반영합니다. "승리의 성모"라는 명칭은 화이트 마운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성모 마리아의 중재에 따른 하느님의 개입으로 여겨져 붙여졌으며, 신자들을 위한 강력한 보호자이자 옹호자로서의 마리아의 지위를 강화시켰습니다. 가르멜회는 승리에 도움을 주신 성모 마리아를 기리고 가톨릭 신앙에서 그녀의 중추적인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승리의 성모님께 교회를 헌정했습니다. 이 봉헌식은 또한 프라하에서 가톨릭의 지배력을 재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는 가톨릭 미사의 회복과 개신교 영향력의 근절을 상징합니다. 가르멜회는 성당을 가톨릭 전례 관행에 맞추고 자신들의 영적 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조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가르멜 수사 시대에 교회 변화의 중심은 프라하의 아기 예수상을 획득한 일이었습니다. 아기 예수상이 성당에 세워진 순간부터 수많은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 습니다. 신자들은 아기예수상 앞에서 기도한 후 신체적 치유, 영적 개종, 기타 하느님의 개입을 전했습니다. 이 기적들은 공동체와 신자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을 기록하고자 했던 가르멜회 회원들에 의해 꼼꼼하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인 아기 예수의 명성은 급속도로 퍼져 보헤미아 전역과 그 너머에서 순례자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성당은 주요 순례지가 되었고, 방문객들은 아기 예수의 중보를 구하기 위해 프라하로 모여들었습니다. 순례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점점 늘어나는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성당을 추가로 확장하고 개조하게 되었습니다.

프라하의 아기 예수 성상 유래

프라하의 아기예수지만, 원래 아기 예수상은 16세기 후반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수도원이 완전히 파괴되어 몇 명의 수사들만이 폐허더미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아기 예수에 대한 신심이 깊은 요셉이라는 수사가 어느 날 바닥을 쓸고 있는데 우아한 모습의 한 아이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바닥이 눈부시도록 비질을 잘하시네요. 하지만 지금 성모송을 바칠 수 있나요?"라고 물었고, 요셉 수사는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모으고 성모송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바로 이때 그 아이는 말했습니다. "그게 바로 나다"라고 외침과 동시에 곧 그 아이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사님은 그때 일을 기억하면서 그 아기 예수님을 또 만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너는 내 모습 그대로 담은 밀랍 인형을 만들어라"라는 아기 예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요셉 수사는 기억을 더듬으며 밀랍 형태로 여러 가지 모습의 아기 예수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누추한 방 안에 한 무리의 천사들과 함께 아기 예수가 또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는 “나다. 내가 왔다. 나를 바라보아라. 이제 너는 내가 지닌 천상의 얼굴 표정을 그대로 밀랍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수사는 아기 예수와 혼동할 만큼 똑같은 형태의 밀랍 인형을 다 만들고 감동에 젖어 무릎을 꿇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장은 성대한 행렬을 갖추어 그 밀랍 성상을 성당에 모셨습니다.

아기 예수 성상의 여정

스페인 성당에 모셔진 지 1년 후에, 도나 이사벨라 후작이 이 아기 예수상을 가져가 가문의 가보로 전해지다가, 딸인 마리아 만리케즈라가 보헤미아 귀족과 결혼하게 되어 혼인 선물로 주었고, 그녀는 다시 자신의 딸 마리아 폴리 세나가 결혼할 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폴리 세나는 1628년 극심한 빈곤 상태였던 승리의 성모 가르멜 수도원에 아기 예수상을 기증해, 그 수도원에 수많은 신자들이 몰려옴으로써 수도원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후 종교전쟁이 일어나면서 수도원은 다시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으며 아기 예수님에 대한 신심은 침체되고, 아기 예수상은 1631년 성당을 약탈한 작센 군대가 아기 예수상을 제대 뒤에 내팽개쳐버려 팔이 부러진 채 방치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뒤 전쟁으로 인해 쫓겨났던 수도 공동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치릴로 신부는 쓰레기더미에서 예수상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는데,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내 손을 되찾아 주어라. 그러면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겠다. 너희가 나를 경배하는 것처럼 나도 너희를 찾아갈 것이다". 치릴로 신부는 수도원장에게 달려가 예수님의 팔을 고치게 해달라고 청원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그 성상을 모실 경당을 새로 만들어 드리고 1655년 4월 4일에는 아기 예수님의 대관식이 성대하게 거행됐습니다. 이어 프라하의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신심이 이웃나라로 확산됐고, 20세기 들어서는 선교사들과 이민자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아기 예수 성상의 의미 

프라하의 아기 예수상
프라하의 아기 예수상

 
스페인 한 수도원에서 발현하신 아기예수는 지금은 체코 프라하의 말라스트라나에 있는 승리의 성모성당(프라하 아기 예수 성당)에 18인치의 키에 넓은 받침돌 위에 모셔져 있습니다. 세 살 정도의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값비싼 대관식용 외투를 걸치고 머리에는 아주 큰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 쓰여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왼손은 십자가가 얹혀 있는 지구를 들고 계시는데 이것은 전 세계의 왕다운 권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은 축복을 하기 위해 손이 올려져 있습니다. 두 손가락이 세워져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접힌 두 손가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한분 하느님이시라는 삼위일체를 뜻합니다. 그리고 아기예수님께 기도하여 치유받은 사람들이 감사의 의미로 아기예수님께 봉헌을 하였는데, 1788년 한 귀족의 딸이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자 감사의 마음으로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셨고 머리의 왕관은 베르나르도 이냐시오라는 성주가 봉헌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옷도 사제처럼 전례시기에 따라 색깔이 바뀌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 성상과 관련된 기적

아기 예수 대성당의 가장 눈길을 끄는 측면 중 하나는 프라하의 아기 예수의 기적적인 치유에 대한 수많은 보고입니다. 신자들은 동상 앞에서 기도한 후 육체적, 정신적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러한 기적은 수 세기에 걸쳐 일어났으며, 기록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불치병의 회복부터 만성 질환의 치유까지, 대성당은 건강 문제에 있어 신성한 개입을 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소가 되었습니다. 

아기 예수 대성당은 분쟁과 혼란의 시기에 기적적인 보호를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신자들은 30년 전쟁 동안 아기 예수상이 프라하를 파괴로부터 보호하였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대성당과 신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보호 의식은 피난처이자 영적 안전의 장소로서 대성당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또한 이 성상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이들은 누구나 위험에 처했을 때는 도움을 받고, 우울할 때는 위안을, 빈곤할 때는 도움을, 불안할 때는 안정을, 절망할 때는 희망을, 병들었을 때는 건강을 얻게 됩니다. 이 놀라운 은총의 아기예수님에 의해 치유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이 아기 예수는 적대감을 없애며, 갇힌 자를 해방하고 죽음의 선고를 받은 이를 구원하며, 뉘우칠 줄 모르는 죄인을 회개시키며, 자녀가 없는 이들에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축복을 내려 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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