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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일본 아키다 성모님 발현지

by 루시아1004 2024.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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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발현 당시 일본의 사회적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세계 최고의 산업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사회, 문화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은 점차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아 옛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혼합되었습니다. 또한 환경 문제, 청소년 시위, 전통문화 및 종교 관습과의 단절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경제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본인들 사이에는 더 깊은 의미와 영적 성취를 추구하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주요 종교는 전통적으로 신도와 불교였습니다. 일본의 토착 신앙인 신도는 사람들을 조상 및 자연 세계와 연결하는 카미(영혼)와 의식에 중점을 둡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유입된 불교는 일본 문화에 깊이 흡수되어 장례 관습과 도덕적 가르침을 비롯한 삶의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에 가톨릭 신앙이 전해진 것은 1540년대 스페인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도쿠가와막부의 극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일본 기독교인들이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 유신이 되어서야 일본의 가톨릭은 공식적으로 다시 허용되었습니다. 1970년대까지 일본 가톨릭교회는 복음화, 교육, 사회봉사에 초점을 맞춘 작은 존재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녜스 사사가와 수녀가 보고한 아키타의 성모 마리아 발현은 이러한 종교적 다양성과 소수 기독교 신앙의 맥락에서 일어났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이 중요한 것은 성모님을 통하여 교회와 인류에게 주신 하늘의 메시지 때문입니다. 기도, 참회, 회심을 강조하는 발현의 메시지는 일본의 급속한 현대화와 문화적 변화 속에서 가톨릭 신자들과 영적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일본에는 약 40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아키타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의 믿음과 신앙

아키타 성모 발현은 일본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사건으로, 1973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 아키타 현의 수녀 사사가와 아녜스에게 일어난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는 1931년 5월 28일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19세 때 맹장염 수술을 받다가 중추 신경계가 손상되어 마비된 상태로 16년 동안 병상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간호사가 믿음에 대한 책을 빌려주었는데 그것을 읽고 가톨릭에 매료되어 신자가 되었고 그 후 건강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나가사키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으나 4개월 만에 건강이 다시 악화되자, 수녀원에서 그녀에게 루르드의 기적의 물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의 물을 마시자마자 수녀는 의식을 되찾았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1969년에 그녀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고열로 쓰러져 4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그녀에게 성유를 발라 주었는데 그녀는 모든 대답을 그녀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라틴어로 응답했습니다. 혼수상태 둘째 날에 천사가 그녀와 함께 묵주기도를 했으며 파티마의 구원기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항상 구원기도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 기도가 일본에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신자들 사이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회복 후 아녜스는 성체 봉사회에 입회하게 됩니다. 그녀가 42세가 되던 1973년 1월에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3개월 후 그녀는 완전히 청력을 상실했으며, 아키타에 있는 수녀원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 6월 12일, 그녀는 수녀원 성당 감실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고,  열흘 후 성심 대축일 전날에는 빚이 붉은 불꽃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감실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엎드려 성체 앞에 숭배하였습니다. 1973년 6월 28일 그녀의 손바닥에 열십자로 교차된 성흔이 나타난 데 이어 성체봉사회 수녀원 성당에 모셔놓은 성모상의 손바닥에도 동일한 성흔이 나타났습니다. 

눈에서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는 목각 성모상

성모 마리아의 예언과 경고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는 성모 마리아로부터 총 세 번에 걸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성모 마리아로부터 첫 번째 메시지를 받은 것은 1973년 7월 6일 새벽으로, 당시 손에 나타난 성흔으로 심하게 고통받던 와중에 수호천사의 안내로 눈부신 빛으로 둘러싸인 성모상 앞으로 가서 마리아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나의 자녀들아, 세상은 큰 죄로 물들어 있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잊고 있다.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가라.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쳐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용서하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로사리오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자들에게 매일 로사리오를 바치도록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사사가와 수녀의 체험에 대해 교회 당국은 발현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으며,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가 진정한 신앙적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는지 평가했습니다. 

1973년 8월 3일, 두 번째 발현에서는 성모 마리아상에서 눈물과 피를 흘리는 기적을 보였습니다. 이 기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적 충격을 주었으며,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에 대한 관심을 높였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이 발현에서 인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이 눈물은 인류의 죄악에 대한 나의 슬픔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기도하고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가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이 메시지는 성모 마리아가 인류의 죄악에 대한 깊은 슬픔을 표현하며, 회개하지 않으면 다가올 재앙에 대한 경고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눈물과 피에 대해 과학자들은 이 현상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실시했으며, 교회 당국도 신중하게 발현의 진실성을 평가했습니다. 1984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아키타 성모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며, 이는 많은 신자들에게 신앙의 깊이를 더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3년 10월 13일, 성모 마리아는 다가올 재앙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만약 인류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를 지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세계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마라. 기도와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돌아가면,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 성모 마리아는 다가올 재앙에 대한 경고와 함께, 기도와 회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또한, 성모 마리아는 신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하느님께 돌아가면 자비를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세 번째 예언 이후, 많은 신자들이 아키타 성모 발현의 메시지를 믿고 따르기 시작했으며 아키타는 단순한 발현 장소가 아닌, 깊은 신앙적 체험과 회개의 장소로서 많은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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