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종교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기적적인 탄생과 관련된 장소로서 신앙을 심화하고 종교의 성서적 역사와 연결되기를 원하는 순례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기도, 고해성사, 미사 참여 등 다양한 종교 활동에 참여하고,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인 6월 24일 특별한 전례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영적쇄신과 은총을 지향합니다.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의 역사적 배경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성당의 기원은 성서의 핵심 인물들의 삶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기리려는 초기 기독교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통적으로 세례 요한의 탄생과 관련된 유적지는 예루살렘 근처 유다 언덕에 있는 마을인 아인 카렘(Ein Kerem)에 있습니다. 루카복음에 따르면 이곳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임신 중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입니다(루카복음 1:39-45). 이 장소에 성당이 처음 건설된 것은 서기 4~5세기 비잔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기간에는 성서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식별하고 기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그의 어머니 헬레나의 영향으로 성지에 많은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세례 요한을 존경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순례와 예배의 장소였을 것입니다.
중세 시대, 특히 십자군 전쟁 중에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성당이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종교적 열정에 힘입은 십자군은 기독교 성지를 복원하고 보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2세기에 그들은 교회를 재건하여 건축학적 웅장함을 강화하고 잠재적인 위협에 대비하여 교회를 강화했습니다. 이 기간에는 교회 주변에 수도원 공동체가 설립되어 순례지로서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 지역에서 십자군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성당을 포함한 많은 성지가 방치되고 훼손되었습니다. 17세기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복구를 시작해 1885년에 보수하고 개축하였습니다. 이때 헬라어로 “주의 순교자들 만세!”라는 문구가 있는 모자이크가 발견되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성서 고고학과 기독교 유산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인해 세례 요한 탄생 교회를 비롯한 많은 고대 교회에 대한 상당한 복원 노력이 이루어졌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고고학자 살레르 신부는 1945년에 이곳 성전 주위를 발굴하다가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성전터를 찾아내어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던 세례자 요한의 기념 성전터를 재입증하였고, 당시 성당이 있던 터에 새로 지어진 것이 현재의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성당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즈카르야의 노래
즈카르야(축일 11월 5일)라는 유다교 사제인 요한의 아버지는 아론의 피를 이어받은 어머니 엘리사벳(축일 11월 5일)과 결혼하고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제비를 뽑아 성전에서 기도할 자로 선발되어 홀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곧 엘리사벳이 남자아이를 잉태하게 될 것이며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요한이라 지어 부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덧붙여 요한은 메시아의 선도자를 낳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엘리사벳의 임신과 자신으로부터 자식이 생긴다는 예언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즈카르야는 그 대가로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고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여드레째 되는 날, 엘리사벳은 아기의 할례식에 가서 아들의 이름을 천사의 계시대로 요한으로 지으려 하였으나, 조상의 이름 중에서 하나를 따서 이름을 짓던 당시 유대인의 관습에 맞지 않는다며 친척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결국 친척들은 아이 아버지인 즈카르야에게 아이 이름을 물으러 갔고,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가져오게 하여 아이의 첫 이름을 '요한'이라고 쓰자마자 즈카리야는 즉시 입이 열렸고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 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68~79)
성경 속에서의 세례자 요한의 생애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소년기에 일찌감치 요르단 지역의 광야로 가서 낙타 가죽 옷을 입고, 메뚜기와 야생꿀을 먹으면서 자신의 선조들처럼 유목민처럼 지냈습니다. 그는 30세 때부터 갈릴레아의 요르단 강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고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유다계의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었기에 얼마든지 아버지의 직분을 이어받아 당대 유다인 사회에서 특권층으로 호의호식할 수도 있었지만, 요한은 그런 길을 마다하고 '광야에서 울부짖는 소리'로서 메시아의 등장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신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거라고 외쳤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자신이 오히려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예수님의 결심이 확고하여 그에게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이후 세례자 요한은, 동생을 죽이고 동생의 아내를 취한 헤로데왕과 그의 아내 헤로디아를 비판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감옥에 갇혔을 때의 세례자 요한은 그 이전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태오복음에서 감옥에 갇힌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자신이 행한 기적들을 언급하며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라고 답변하십니다.(마태오 11:3~6) 어느 날 헤로디아가 왕의 생일잔치에서 딸인 살로메에게 춤을 추게 하고, 이에 매우 만족한 헤로데는 살로메에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이에 헤로디아는 살로메를 통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도록 강요합니다. 결국 헤로데 왕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감옥에 있던 요한은 그대로 목이 달아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요한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력은 계속되었고 그는 순교자이자 선지자로 영예를 얻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사역
세례자 요한의 공적 사역은 티베리우스 가이사가 통치한 지 15년쯤에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직접적이고 단호했습니다. “회개하여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태오복음 3:2). 요한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요르단강에서 상징적인 세례를 받음으로써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 세례는 내적인 회개와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나타내는 강력한 표시였습니다. 이러한 요한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기 위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강 주변 지역에서 군중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회 계층의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촉구하였고 단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 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서 자리를 확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종교계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비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경고했습니다(마태오 3:7-10).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과 맞서는 요한의 담대함은 진정한 회개와 의로움에 대한 그의 헌신과 위선과 피상적인 종교에 대한 경멸을 나타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예수님의 세례였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요한에게 오셨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고 그분의 신성한 정체성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메시아를 위한 길을 예비한 선구자로서 요한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요한 자신도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이시다”라고 예수님의 신분을 증거 했습니다. (요한 1:29). 진리와 의로움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흔들리지 않는 헌신은 결국 순교로 이어졌습니다. 요한은 감옥에서 목이 잘렸으며, 그의 제자들이 와서 그의 시신을 가져다가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6월 24일에 기념되는 그의 축일은 기독교 전례력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축일 중 하나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일과 더불어 그의 순교일은 8월 29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