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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예루살렘 성모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

by 루시아1004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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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케렘의 성모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
아인 케렘의 성모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

 
성모 방문 기념 성당은 예루살렘 근처의 아인 케렘에 있으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세례 요한을 잉태한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한 신약성경 루카복음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기념 성당은 마리아 신심의 중심지이기도 하며, 마리아의 찬미가인 마니피캇(Magnificat)은 가톨릭교회의 전례와 성모신심 생활의 중심 요소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5월 31일, 동방 정교회에서는 3월 30일을 성모 방문 축일로 기념합니다. 이러한 축하 행사에는 행렬, 기도, 찬송가가 포함되어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성모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여정

가톨릭교회에서는 해마다 5월 31일을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방문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루카복음 1장 5-25절에 세례자요한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고 나이도 많은 여자였고 남편 즈카르야는 늙은이였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나,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아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엘리사벳은 잉태하게 되었는데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야 지방으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마리아를 덮을 것이며, 아기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또한 천사는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고 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순종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마리아는 130km 떨어진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엘리사벳 집으로 서둘러 떠나게 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잉태한 기쁨을 나누고 더 큰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인 것입니다. 

성모마리아 방문의 영적 의미

성모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 먼저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리아가 참으로 위대한 분을 잉태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에 차서 말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루카 1:42-44).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과 순종의 심오한 모델이 됩니다. 천사의 메시지에 대한 마리아의 즉각적인 반응과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여정은 개인적인 어려움에 관계없이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그녀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행동은 겸손, 용기,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의 미덕을 구현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그들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예수와 세례 요한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합니다. 엘리사벳의 태 속에서 요한이 뛰놀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그의 장래의 역할을 알리는 예언적 행위입니다. 이 순간은 생명이 수태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며 태아가 심오한 영적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엘리사벳의 인사에 응답하여 마리아는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의 성모찬가인 마니피캇(Magnificat)을 선포했습니다. 루카복음 1장 46-55절에 나오는 마니피캇은 마리아의 겸손과 하느님의 자비와 신실하심에 대한 인식을 심오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이 하신 일의 위대함을 인정하며 시작합니다. 마니피캇은 그리스도교 전례와 개인 신심의 초석이며 신성한 정의, 자비, 사회적 기대의 반전이라는 주제는 신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하심과 겸손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향한 그분의 우선적인 사랑을 찬양하며 기독교 역사 전반에 걸쳐 수많은 찬송가, 기도, 성찰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마니피캇은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위로와 격려의 원천입니다.

성모 방문 기념 성당

성모 방문 기념 성당은 예루살렘 근처의 그림 같은 마을인 아인 케렘(Ein Kerem)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성당은 기독교 전통의 중요한 사건인 성모 마리아가 사촌 엘리자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합니다. "유다 산간 지방"으로 알려진 아인 케렘(Ein Kerem)은 이러한 중요한 성서적 사건과 연관되어 초기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순례자들은 기독교 초기부터 이 장소를 방문해 왔으며 성모님의 방문을 기념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아인 케렘(Ein Kerem)에 예배 장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당은 성지에 있는 다른 많은 성당과 마찬가지로 분쟁과 정복 기간 동안 손상과 파괴를 겪었습니다. 12세기 십자군은 초기 비잔틴 건축물의 폐허 위에 새로운 성당을 세웠으나 12세기 후반 무슬림이 정복할 때까지 버티다가 파괴되고 버려졌습니다.
19세기 후반, 성지에서 강력한 입지를 굳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성모님 방문기념성당을 재건하는 임무를 맡았다. 기독교 성지 보존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진 프란체스코회는 그 땅을 인수하고 재건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현재의 교회는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발루치(Antonio Barluzzi)의 감독하에 195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성모 방문 기념 성당은 1층과 2층 두 층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 독특한 건축학적, 예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층 성당은 예전에 동굴이 있었던 곳으로 동굴 안쪽에 우물이 있습니다. 기적의 바위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윗돌 하나가 있는데 이것은 헤로데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베들레헴 인근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병사들을 피해 엘리사벳이 요한을 데리고 도망 다니다 막다른 길에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엘리사벳이 기도를 하자 바위가 갈라져서 그 뒤쪽으로 요한과 함께 숨어 그 학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적의 돌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2층 내부에는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그중 대부분은 Barluzzi가 직접 또는 그의 지시에 따라 제작한 것입니다.

성모 방문 기념 성당 2층에 있는 프레스코화

방문기념 성당의 프레스코화의 의미

성모 방문 기념 성당 2층으로 올라가면 5개의 대형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이것은 가톨릭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호칭을 기억하게 합니다. 
첫 번째 그림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님을 테오토코스 즉,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부여되는 장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즉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그리스도론을 강조하기 위해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님이 인성과 신성을 지닌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31년 교황 비오 11세가 매년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정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의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신 마리아"로 우리를 품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3세기에 알려진 기도문에 "천주의 성모여, 당신의 보호에 우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항상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여.”라는 것은 성모님의 모성적 사랑에 의지하여 성모님께 간구하여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그림은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은총의 중개자"로서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에 도움을 주시는 어머니로서 애절함으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게끔 적극적으로 도와주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네 번째 그림은 레판토 해전을 나타내고 있는데, 1571년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령, 스페인 왕국 등으로 연합한 신성동맹 함대와 오스만 제국이 해상 전투를 벌였는데 오스만 제국이 참패한 전쟁입니다. 또한 오스만 해군의 노예로서 노를 젓던 그리스도교 1만 5천여 명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 군사들은 그 당시 자신들이 거둔 승리가 묵주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받은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의 도움 때문이라고 믿었고, 교황 비오 5세는 해전 승리를 기념하여 해전이 있었던 10월 7일을 묵주기도의 모후 기념일로 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다선번째 그림은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 즉 무염시태에 대한 논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야고보의 원 복음서에 의하면 마리아의 아버지인 요아킴의 40일간의 단식기도와 어머지 안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느님께서 그 부부가 낳을 딸을 세상에 구세주로 보내실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로 간택하시고, 이 부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면서 세상의 죄로부터 물들지 않도록 특별히 보호하셨다고 합니다. 무염시태가 정식 교리로 선포된 것은 1854년이며, 4년 후 1858년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글도 모르는 무지한 어린아이를 통해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이라고 스스로 밝혀, 성모님 발현 이후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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