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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벨기에 바뇌의 성모님 발현성지

by 루시아1004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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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에 세원진 작은 성당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에 세워진 작은 성당

 
벨기에 바뇌(Banneux)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바뇌 성모님 발현 성지는 매년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성모 마리아 신심의 중요한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순례지는 1933년 성모 마리아가 12세 소녀 마리에뜨 베코에게 발현한 것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동정마리아'로 알려진 이 성모님 발현은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격변기에 일어났으며 발현 동안 성모 마리아가 전한 메시지는 기도, 겸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현재까지 이 성지는 치유, 기도, 영적 성장을 위한 신성한 공간을 제공하는 희망의 등불로 남아 있습니다.

바뇌의 성모님 발현 배경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대공황은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였고 유럽은 정치적 불안정, 사회적 불안과 함께 격동적인 시기였습니다. 다른 많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벨기에도 경제대공황의 영향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모님께서는 1933년 추운 겨울, 대부분 소규모의 경작으로 살아가는 아주 작고 가난한 마을인 바뇌에서 12살의 마리에뜨 베토라는 소녀에게 처음으로 발현하셨습니다. 이 소녀의 가정 역시 매우 가난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총 8회에 걸쳐 발현하셨는데, 자신을 "구세주의 어머니" 또 "하느님의 어머니"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밝혔습니다.

마리에뜨는 1921년 3월 25일 일곱 형제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3월 25일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특별한 날인 성모 영보 축일입니다. 그리고 그날은 또한 십자가가 엄숙히 공경되는 날인 성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집에는 십자가조차도 없었고 종교에는 거의 무관심이었습니다. 마리에뜨의 가정은  모든 종교적인 의식이나 교회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에뜨 역시 가족들의 이러한 무관심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마리에뜨는 유순하고 침착하며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소녀였으며 성모님은 보잘것없는 마리에뜨를 당신 메시지의 전달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모님의 사랑과 축복은 교회의 테두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은총과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뇌  성모님 발현 이후, 마리에뜨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며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모님의 발현

첫 번째 발현은 1933년 1월 15일 주일 저녁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12세였던 마리에뜨는 남동생을 기다리며 부엌의 창문에서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밤이었고, 땅은 흰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었으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마리에뜨는 정원에서 광채를 발하며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인 채 움직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아름다운 부인을 발견했습니다. 겁에 질린 마리에뜨는 너무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났다고 어머니께 말했지만 어머니는 허튼소리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마리에뜨는 길에서 주은 묵주를 꺼내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부인은 마리에뜨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습니다. 마리에뜨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엄마는 귀신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마리에뜨가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다시 마리에뜨가 창가로 갔을 때 아름다운 부인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첫 만남은 마리에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일련의 발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흰옷을 입으시고 허리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파란색의 긴 띠를 두르시고 발에는 황금색 장미가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베일을 쓰시고 고개를 숙이시면서 약간 왼쪽으로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시며 오신 모습은 루르드에 발현하신 성모님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또한 두 곳 모두 성모님은 치료의 샘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셨습니다. 현재 성모님께서 바뇌에 주신 치료의 샘물에는 루르드의 마싸비엘에서 가져온 바위가 놓여있습니다. 오늘날 샘물은 매일 많은 물이 나오고 있으며 수많은 기적적인 치유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바뇌 성모님 발현은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벨기에 주교단이 공식적으로 조사하였습니다. 주교단이 작성한 보고서는 정확한 조사를 위해 로마에 제출되었고, 1942년 5월 리에주 교구장 케르크호프스 주교는 성모님 발현을 처음으로 승인하였습니다. 1947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바뇌성모님 발현에 대한 공식 승인이 내려지게 되었습니다.
 

발현하신 성모님의 메시지

1933년 1월 18일 수요일저녁 7시경 영하 12도가 되는 강추위에서도 마리에뜨는 3일 전에 성모님을 보았던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마리에뜨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진 지점의 허공에 회색 구름 같은 것 위에 떠 계셨습니다. 그 부인은 마리에뜨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며 샘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성모님과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 이 샘물에 손을 담가라, 이 샘물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1933년 1월 19일 마리에뜨는 성모님께 '부인,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동정 마리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에뜨가 샘물에 대해서 물어보자, '이 샘물은 모든 나라들과 병든 자들을 위한 샘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1933년 1월 20일 마리에뜨는 몹시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 묵주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2분 후 나타나신 성모님께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묻자 '나는 작은 성당을 원한다'라고 하시며 십자성호를 그어 마리에뜨를 축복해 주시고 사라지셨습니다. 순간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그로부터 3주 동안 성모님은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1933년 2월 11일 성모님은 나타나셔서 '나는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 다시 보자꾸나' 하시면서 사라지셨는데 이때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많이 기도하라”라고 촉구하시며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표현하셨습니다. 이 날은 루르드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신 지 7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33년 2월 15일 마리에뜨는 성모님께 본당 신부님께서 표징을 보여달라고 저에게 부탁하셨다고 말하자, '나를 믿어라. 나는 너희를 믿겠다'라고 말씀하시고 사라지셨습니다.
1933년 2월 20일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몹시 추웠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다시 그녀를 샘이 있는 곳으로 이끄시며, '사랑스러운 딸아 , 기도를 많이 하거라'라고 하시면서 사라지셨습니다.
1933년 3월 2일 목요일 억수 같은 빗속에서 마리에뜨가 기도를 시작할 때 갑자기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개며 별들이 빛났습니다. 성모님은 기도와 신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리에뜨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맡겼습니다. 슬픈 얼굴로 성모님은,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를 많이 하거라'라고 당부하시면서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십자성호를 그어 주시면서 축복하신 다음 사라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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