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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모세와 이집트 시나이산

by 루시아1004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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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산 정상에서 바라 본 풍경

시나이산으로 향하는 모세의 여정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가나안 지방으로 이동하였으나, 요셉을 중심으로 한 일부가 이집트에 들어가 나일강의 델타 지역 동쪽에 머물러 살게 되었습니다. 탈출기에 의하면 그 뒤 새로운 파라오가 즉위하자 요셉의 후손들은 이집트의 노예로서 학대와 강제 노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파라오의 가혹한 통치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구원을 부르짖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 왕실에서 자란 히브리 사람 모세를 선택하셨습니다. 시나이산으로 향하는 모세의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을 수세기에 걸친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내는 극적인 출애굽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집트에 일련의 신의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기적적으로 갈라진 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안전하게 인도하게 됩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통과하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은 음식과 물의 부족을 포함하여 시련과 환난으로 특징지어졌으며, 이는 그들의 믿음과 신성한 섭리에 대한 의존을 시험했습니다. 광야 체험은 시나이산에서 맺을 언약을 정결케 하고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하느님은 하늘에서 만나와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임재와 돌보심을 강화하셨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이 여정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 순종, 의존을 나타냅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반도는 기원전 13세기경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머물렀던 광야입니다. 시나이산기슭에는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 있습니다.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며 “모세야, 신발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라는 하느님의 말을 들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주장하며 불타는 가시덤불이 있는 장소에 작은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기독교 수도사들이 정착했는데, 사라센인들의 침입으로 학살과 순교의 고통을 당하여, 이에 수도사들은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에게 구원을 청했고, 황제는 요새처럼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수도원을 548∼565년에 세웠습니다. 성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불리게 된 것은 11세기 이후부터입니다.

성 카타리나는 당시 기독교가 박해를 당하고 있었는데도 독실한 신자가 되었고, 우상 앞에 제물을 바치는 로마 황제를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황제는 50명의 현인을 보내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들이 설득당했습니다. 그녀는 칼날이 붙은 네 개의 바퀴에 매달아 앞뒤 바퀴가 반대 방향으로 돌면 육신이 산산조각 나는 형벌을 받았으나 신의 도움으로 바퀴가 헛돌았다고 합니다. 마침내 그녀는 305년 11월 25일 목이 베어졌는데, 그 상처에서 붉은 피가 아닌 뽀얀 우유가 뿜어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500년이 지난 9세기 초 어느 수도사가 빛에 휩싸인 그녀의 시신이 천사에 의해 시나이산 근처 정상에 옮겨지는 환시를 보게 됩니다. 다음날 그곳에 올라간 수도사는 썩지 않은 채 향내를 풍기는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고, 금으로 만든 관에 넣어 수도원 성당에 안장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이곳은 성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알려졌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줄을 잇게 되었습니다. 

시나이산에서의 하느님의 계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산에 올랐습니다. 시나이산 계시의 핵심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에는 하느님을 공경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 도둑질, 간음과 같은 행위를 금지하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을 받음과 동시에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계명들이 새겨진 돌판은 이 언약의 영속성과 구속력을 상징했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법적 계약일뿐만 아니라 영적 유대이기도 했으며, 이는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과 그분의 율법에 따라 살겠다는 그들의 헌신을 재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서 계명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모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 그들은 아론을 설득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우상 숭배 행위는 그들이 방금 받은 계명과 완전히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이 취약하고 이교 관습으로 되돌아가기 쉽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언약에 대한 충실성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보여주는 그들의 영적여정에 있어서 중대한 좌절이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배교를 목격한 모세는 의로운 분노로 돌판을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중보자로서 행동하여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그분의 진노를 멈추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자비로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을 갱신하셨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재확인하는 새로운 돌판을 받기 위해 다시 한번 시나이산에 올랐습니다. 이 갱신의 행위는 그분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지속적인 헌신과 용서하고 회복하려는 그분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워진 언약은 또한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과 신실함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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