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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해외 성지순례 : 로마 도미네 쿠오바디스 대성당과 사도 베드로

by 루시아1004 2024.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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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도로 아피아 가도에 위치한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
고대 로마 도로 아피아 가도에 위치한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

 

팔미스의 성모 마리아 교회로도 알려진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의 기원은 로마의 초기 기독교 역사와 깊이 얽혀 있습니다. 로마의 고대 아피아 가도(Via Appia Antica)를 따라 위치한 작지만 역사적으로나 영적으로 중요한 교회입니다. 이 성당은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적적으로 만난 장소에 세워졌으며, 베드로가 순교를 앞두고 로마로 돌아오게 된 심오한 영적 만남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도미네 쿠오바디스 대성당 설립 배경

도미네 쿠오바디스 대성당(Domine Quo Vadis Cathedral)은 수세기에 걸친 역사와 영적 여정의 증인이었던 고대 로마 도로 아피아 가도( Via Appia Antic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아피아 가도는 사도들과 선교사들이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길로 특별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또한 도미네 쿠오바디스 대성당이 지하 묘지와 가깝다는 사실은 아피아 가도의 광범위한 기독교 유산의 일부로서 그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당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종종 박해받은 초기 기독교인의 무덤인 인근 카타콤바 방문을 포함하여 초기 기독교 역사와 신앙의 초기 지지자들의 희생에 대해 경험하게 됩니다. 도미네 쿠오바디스 대성당은 다양한 기독교 종파의 방문객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는 교파의 경계를 초월하여 기독교 전통에 대한 공통된 믿음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에게 울려 퍼집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와 공유된 유산의 상징 역할을 합니다.

 

신약성경 외경인 베드로 행전의 전승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가 점점 심해지는 네로황제의 박해와 처형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로마를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아피아 가도를 통해 로마를 막 벗어나려던 베드로는 로마를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순교 직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정한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 또다시 도망치던 것을 크게 뉘우치고는 로마로 다시 돌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다시 만났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작은 성당이 세워졌으며, 성당 바닥에는 이 만남을 기념하는 예수님의 박자국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Domine Quo Vadis 유적지에서 베드로와 예수의 만남은 신성한 뜻에 대한 순종과 순교라는 궁극적인 희생을 상징하며, 베드로가 순교를 앞두고 로마로 돌아오게 된 심오한 영적 만남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 주제는 박해에 맞서는 신실함과 용기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기독교 가르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미네 쿠오바디스 대성당은 역사적인 기념물일 뿐만 아니라 순례자와 방문객에게 자신의 신앙 여정을 되돌아보게 하며, 이러한 영적 가치의 지속적인 힘에 대한 증거 역할도 합니다.

초대교회 베드로의 리더십

초기 교회에 대한 베드로의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의 그의 역할이었습니다(사도행전 15장). 이 공의회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이 유대 율법, 특히 할례를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논쟁은 일부 유다인 기독교인들이 이방인 개종자들은 모세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급성장하는 기독교 공동체 내에 긴장감을 조성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 이전에 베드로는 이방인인 백부장 코르넬리우스와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민족이나 유대 관습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보여주셨는지 이야기했습니다(사도행전 10,11장). 그는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모세 율법의 멍에를 부과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보편성을 확인하고 유대 관습을 고수하지 않고도 이방인을 교회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길을 닦는 기독교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인 기독교인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여 초기 교회 내에서 일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베드로의 리더십은 믿음, 기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그의 목회적 돌봄은 지속적인 박해와 도전에 직면한 신자들의 신앙과 사기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순교의 여정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듯이,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한 일은 그의 사역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기적적인 사건은 하나님의 개입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를 리더십과 전도의 새로운 단계로 이끌었습니다. 베드로의 투옥과 기적적인 탈출사건은 급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을 진압하려던 헤로데의 통치 중에 일어났습니다(사도행전 12:1-19). 헤로데는 이미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하고 유대 당국자들이 이를 기뻐하는 것을 보고 파스카축제가 끝나면 그를 재판에 회부할 의도로 베드로를 체포했습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네 개의 경비조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재판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로 묶인 채 두 군인 사이에서 자고 있었고, 문 앞에는 보초병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 안에 빛이 비쳤습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며 “빨리 일어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의 손목에서 쇠사슬이 풀리자 천사는 그에게 옷을 입고 신을 신고 따라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환시를 본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첫째와 둘째 경비병을 지나 성으로 통하는 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들이 어떤 거리를 걷고 난 후에 천사는 베드로를 떠났습니다. 이것이 환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베드로는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대 백성이 바라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탈옥 후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라는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고 주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셨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라고 지시한 후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 후 베드로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 도망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깜짝 놀란 베드로는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Domine, quo vadis)"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나는 네가 버리고 간 로마의 어린양을 위해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에 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자신을 뉘우치며 로마로 돌아가 순순히 붙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죽은 자의 도시로 알려진 로마 서쪽에 세워진 전차경기장에서 네로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기를 원했으며 이 십자가는 베드로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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